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표트르 1세 (문단 편집) === 업적 === 러시아에서는 서구의 문물을 들여와 국가를 발전시킨 위대한 개혁 군주로 평가받고 있다. 오늘날 러시아인들의 생활 속에 남아있는 대부분의 문물들을 모두 표트르 대제가 도입했던 것이다. 예를 들어 러시아인들이 제2의 빵이라고 여기는 [[감자]]와 [[커피]], [[담배]]는 모두 표트르 대제가 서구를 여행하면서 발견하고 러시아에 들여왔던 문물이다. 또한 대륙 국가이던 러시아에 해양의 중요성에 대해 눈을 뜨게 한 것도 큰 업적이다. 1703년 [[발트함대]]를 창설해 대북방전쟁 후반부에 [[스웨덴 해군]]을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고, 170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아드미랄티 조선소를 만들어 이후 [[강구트급 전함]] 중 두 척(강구트와 폴타바)이 아드미랄티 조선소에서 건조되는 등[* 나머지 두 척은 [[네바강]]을 끼고 마주하고 있는 발트 조선소(여기는 1856년 민간 조선소로 설립되었다)에서 건조했다. 현재까지도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소로 남아 꾸준히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.] 수많은 함선들을 생산했다.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바닷가에는 바다를 향해 달리는 모습의 표트르 1세 기마상이 있고,[* 이 기마상을 보고 시인 [[알렉산드르 푸시킨]]이 '[[청동기마상]]'이라는 시를 남겼다.] 현재 러시아 해군의 주력함이자 세계 최대의 수상 전투함인 [[키로프급 핵추진 순양함|키로프급]] 4번함의 함명이 [[표트르 벨리키]]다.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수도로 한 후 이전에 비해 러시아의 교역량은 수십배로 늘었으며, [[바르샤바]]에만 있던 [[대사관]]도 세계 여러 곳에 존재하게 되었다. 표트르 대제 당시 쓰인 <차르 표트르 1세 폐하가 1700년 [[스웨덴 국왕]] [[칼 12세]]에 대항하여 전쟁을 시작하게 된 정당한 법적 근거에 대한 강론>[* 표트르 대제 ~러시아를 일으킨 리더십~ 번역본 참고.]를 보면 당시까지 국제무대의 구석에 있던 러시아가 유럽의 공식적 외교 용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로 외교적 부상을 했음을 알 수 있다. 강대한 군대, 세련된 외교, 상트페테르부르크로부터 전해지는 수많은 외국 문물[* 표트르 대제 이후 가라앉을 때도 있었으며, 농민들에게는 그다지 많이 퍼지지 않은 면도 있다.]은 표트르 대제 즉위 30년간 러시아를 일변시켰다. 그리고 이때부터 귀족이라도 군공을 세우지 않으면 고위장교로 올라가기 힘들었기에 귀족들이 러시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이유가 되었으며, 이는 [[조국전쟁]]([[러시아 원정]]) 이후 러시아 최초의 개혁 운동이라 불리는 [[데카브리스트]]의 움직임을 낳는 계기로도 이루어진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